이야기
복음나누기
원시보 야고보
+ 찬미예수님.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는 지난 시간 박취득 라우렌시오의 젊은 순교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정의를 향한 기백을 보았으며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이가 보여 줄 수 있는 놀라운 용기와 순교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주간 동안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셨습니까?
수도원에 처음 들어와 지원자가 되어 배우는 생활 수칙이 하나 있습니다. 방을 나설 때나 현관문을 나설 때 문은 두 손 으로 소리 없이 닫고, 신발은 거꾸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상당히 쉬워 보이지만 이게 만만치 않습니다. 매번 나갈 때 마다 생각해야 하고, 언제나 깜빡하고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 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잊어버리고 이것쯤이야 하기 쉽습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이 생활 수칙은 깨어 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시는 삶의 교육입니다. 이 깨어 있음은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거나 그 대상을 한정 짓지 않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성직자나 수도자나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이 깨어 있음은 삶에 희망과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원시보 야고보 순교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젊어 기백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월등하여 온몸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학식과 지식이 뛰어나 책을 만들거나 교리를 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원시보 야고보 순교자는 나이가 많은 상태로 천주교를 알게 됐고 신앙을 받아 들였으며, 신앙을 지니고 살았던 모든 순간에 깨어 있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원시보 야고보 순교자를 통해 우리가 대림시기에 깨어 있으므로 맞아 들일 기다림에 대해서 함께 살펴 보고 나눠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원시보 야고보 순교자는 나이 60세가 다되어서야 사촌 동생 원시장(베드로)과 함께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고 입교하였습니다. 조선후기 양반들의 평균연령은 53세 정도였다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 참고) 2014년 현재 우리의 삶 안에서 60세는 인생의 새 출발 이라고 할 정도로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당시의 60세는 생을 마감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을 마갈 할 시기에 귀가 열리는 이순이라는 나이는 사물과 사상 그리고 생각과 말을 하나로 아우르고, 선과 악에 대한 진리와 거짓에 대한 사리 분별이 명확해 지는 시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시기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 들인 원시보 야고보는 보다 큰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늘 그와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원시보 야고보 순교자는 “주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따라가서는 안되네. 모든 고통을 참아낸다면 기쁨 가운데서 주님과 착하신 동정 마리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네. 그대들이 여기에 있으면 내 마음이 흔들리니 돌아가도록 하게. 이성을 잃고 대사(大事)를 그르칠 수는 없네.” 이성과 생각 위에 앞서계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나이와 약함을 뛰어 넘어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으로 가득 자신을 채운 놀라운 깨어 있음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알고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것을 내어 놓고 진리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집과 고집 그리고 자존심 앞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진리에 눈을 뜨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성화에 대한 노력과 작은 것을 소홀이 하지 않는 삶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늦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60세에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주님을 부르짖었던 원시보 야고보의 신앙은 결코 늦지 않았으며 결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내 생각이 나를 늙게 만들고 있고, 내 이성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나의 게으름이 너무나도 부족한 신앙인으로 나를 만들고 있다면 지금 원시보 야고보 순교자를 생각하십시오.
신앙은 나이가 아닌 우리에게 점성정신을 요구 합니다. 매 순간순간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은 우리를 깨어 있음으로 안내 할 것이고, 이 깨어 있음은 진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느님 나라로 우리들을 안내 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신발을 뒤로 하고 문고리를 두 손으로 닫으려 노력합니다. 이 작은 노력을 통해 깨어 있는 삶으로 저는 제게 다가오실 예수님을 깨어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며 여러분들은 어떤 깨어 있음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깨어 있지 못하면 만나지 못할 것이고, 만나지 못하면 언제나 늘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실것이 분명하기에 이번 대림 시간 나만의 깨어 있는 방법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의미있는 대림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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