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그를 타일러라 – 연중 제23주일
“그를 타일러라”
9월 6일 / 연중 제23주일
제1독서 : 에제 33,7-9 / 제2독서 : 로마 13,8-10 / 복음 : 마태 18,15-20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 형제의 잘못을 보았을 때,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라, 단둘이 만나라고 합니다. ‘타일러라’는 말씀은 ‘왜 그랬냐?’라고 화내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로 어렵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을 하지 않고, 피하고 무시하고 싶지만, “이웃을 너 자신처럼”(로마 13,9) 말씀이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용기를 잘 써야 하는데 잘 쓰면 충고가 되고, 잘 못쓰면 비난이 됩니다. 충고는 잘못을 고치고 바른길로 가길 바라는 것이고, 비난은 잘못을 보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하신 ‘타일러라’는 충고입니다. 우리가 참 전하기 어려운 충고에 대해서 고민해 봅니다.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제가 깨닫게 된 좋은 충고가 있었습니다. 수도원 초기 양성기 때입니다. 수도원에서는 규칙이 있고, 시간표를 지켜야 합니다. 초기 양성기 때는 22시가 취침시간입니다. 단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시간의 관면을 청할 수 있습니다. 시험 기간에 공부가 부족했을 때, 관면을 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험 기간이었는데, 장상 수사님이 외출을 하셨습니다. 장상 수사님은 취침 시간까지 오지 않으셨는데, 저는 공부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고민하다가 허락 없이 공부를 했습니다. 나중에 사정을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장상 수사님은 제 예상과는 달리, 엄청 화를 내셨습니다. 장상 수사님은 제게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취침 시간은 하느님께 봉헌된 시간입니다.” 격한 감정으로 가르쳐 주셔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납니다. 저는 차분히 설명해 주셨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충고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진심으로 제게 수도자의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타일러라’ 하신 말씀은 진정성 있게 형제의 잘못을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서 충고의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부활 후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왜 배신했어?’ ‘제자의 대표인 네가 나를 어떻게 떠나니?’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7)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3번이나 물으셔서 슬퍼하며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슬퍼할 줄 아셨지만, 배신의 고통에서 일어나,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3번이나 물으신 이유는, ‘나는 배신 했어’라는 자책 말고, ‘내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했지’라는 깨달음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충고에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7)라고 말씀드리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충고의 좋은 2가지 예를 보았습니다. 종종 우리는 충고라고 생각하면서,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실제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저는 제가 아는 분에게 기도 생활에 대해서 조언이라 생각하며 충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 생활 충실하시죠?’ ‘왜 안하세요?’ 저는 비난했지만, 그분은 제게 도리어 좋은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비난하는 말보다는, ‘기도하면 참 좋다’ ‘기도하면 일상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던진 말은 사랑에서 나온 충고가 아니라 비난이었습니다. 비난은 이웃의 잘못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충고와 비난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사랑에 근거한 말은 충고일 것입니다. 고민해 봅니다. 나의 말이, 내 눈에 보기 싫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해서 충고하는 것인지 돌아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타일러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웃이 잘못된 길로 간다면, ‘사랑’으로 진정성 있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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