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하느님의 섭리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의 섭리”
9월 16일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 1코린 12,31─13,13 / 복음 : 루카 7,31-35
초기 양성기 때 노동을 참 많이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수도원에 있는 문을 하나씩 떼어서 빼빠라는 (사포 역할하는 기계)로 문의 페인트를 벗기고, 다시 페인트를 다시 칠했습니다. 문 작업이 끝나자 다른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수도원 지붕 방수코팅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다리 타고 수도원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에 방수 페인트를 벗겨냈습니다. 코팅을 하고, 그 위에 방수 페인트를 바르는 이중 작업이었습니다. 하루는 일이 늦어져서, 손에 녹색 페인트가 묻은 채로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방수 공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성당 옆 배수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이 넘치지 않는 도랑인데 굳이 작업을 해야할까?’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나무로 하면, 몇 년 뒤에 썩지 않을까란 강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몇 년 지나서, 다 썩어서 다 걷어냈습니다.
다른 작업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배수로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양이 많지 않고, 나무는 썩을 것 같은데 왜해야 되지? 그 때 일할 때는 공부하기도 바쁜데, 노동 시간이 왜 이렇게 긴지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일주일을 계산해 보니, 공부할 시간이 채 3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일에 대한 불평, 불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시선으로 돌아봅니다. 하느님께서 그 시간을 통해서 무엇을 바라셨을까? 하느님은 제가 몸만 힘들어하기를 바라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노동을 통한 성화이지 않았을까?’ 단순하게 몸으로, 노동하다보니, 장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복잡한 생각을 단순화 할 수 없지만, 몸은 의지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몸을 쓰는, 단순한 노동을 통해, 단순한 수도 생활의 지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신학 공부가 중요하고 배수로 작업이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시선으로 보면, 몸과 마음을 성화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사건 안에서, 하느님 시선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일상을 해석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들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 7,32) 피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상징하고, 곡을 하는 것은 요한의 설교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완고하여, 예수님의 말씀, 세례자 요한의 말씀 모두를 배척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온 말씀에 대해서 철저히 무조건적인 완고함을 보여 줍니다. 고민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함을 변화시키려고 말씀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하해 버립니다. 바리사이의 완고함은 탈출기 파라오의 완고함과 닮아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달라고, 파라오 앞에서 갖가지 재앙을 보여줍니다. 개구리가 이집트를 덮었다가 사라지고, 등에가 이집트를 덮었다가 사라지고, 메뚜기가 이집트를 덮었다가 사라집니다. 파라오는 표징들을 보았지만, 믿지 않는 완고함을 가졌습니다. 10번째 재앙인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이 죽는 재앙을 겪고 나서,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냅니다. 파라오는 재앙 앞에 변하지 않는 완고함을 보여줍니다. 많은 표징들을 보더라도, 내 생각은 결코 변하지 않는 완고함을 보여줍니다.
파라오와 반대로 성모님은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합니다.”(루카 1,29) 성모님은 아들을 잃어버리고 찾았을 때, 예수님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성모님은 사흘이나 애타게 겨우 찾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루카 2,51)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완고함, 파라오의 완고함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건 안에서, 하느님을 생각하며 전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자신의 삶의 양식을 고수합니다. 돌처럼 딱딱한 마음입니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신앙으로 고민합니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사건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봅니다. 성녀 엘리사벳 씨튼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찬 허락과 섭리가 없이는 아무리 작은 순간적인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일지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있으니, 그 뜻을 고민해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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