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의 방인 사제이신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신학생 시절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박해 떄문에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카오에서 유학을 하는 데에는 많은 경비가 필요했습니다. 조선교회는 박해로 인해 도저히 김대건 신학생을 뒷바라지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김대건 신학생이 사제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신학생을 알지도 못하는 저 먼 나라 프랑스 시골의 많은 신자들이 모은 작은 기도와 정성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마련한 작은 정성들로 가난한 나라 조선의 신학생이 공부 할 수 있었고, 결국 험한 박해 상황 속에서도 한국 최초의 사제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도울 때입니다. 나 하나의 작은 정성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