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복음의 기쁨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9월 11일 /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 1코린 7,25-31 / 복음 : 루카 4,38
참행복과 불행 선언은 균형을 이룹니다. 그 말씀을 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루카 6,24)
부유한 사람을은 부유해서 비난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느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기에 비난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축복하십니다.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이들도 포함됩니다. 복음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교회가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교회라면,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교회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에 대해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중심으로 보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를 관찰 판단 실천의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신학 방법론으로 이 주제를 전개합니다.
먼저 관찰입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이 시대마다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오늘날 우리 현실 안에 가난한 이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목록을 만들어 제공한다. 노숙자들과 중독자들, 난민들, 토착민들, 노인들과 이민자들은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이다. 인신매매로 불법 공장이나 매춘 조직에서 일하거나 구걸에 이용되는 어린이들, 물질적 가난과 성적 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여성들, 자기 방어력이 전혀 없는 태아도 가난한 이들이며, 더 나아가 경제적 이윤과 무분별한 착취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자연도 가난한 존재에 포함된다.
복음의 기쁨 53항에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이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 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배척입니다.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판단입니다.
교황은 오늘날의 경제 체제와 비인간적인 문화,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현실이라는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이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시도한다. 이 선택은 성경적·신학적 근거에 기초한다.
복음의 기쁨 197항에서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의 가난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가난하게 되실”(2코린 8,9) 정도로 하느님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역사 전체는 가난한 이들의 존재를 특징으로 합니다. 구원은 거대한 제국의 변두리 작은 마을에 사는 보잘것없는 처녀가 말한 “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왔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가난한 집의 아기들처럼 가축들 가운데에서 태어나 구유 안에 누워 계셨습니다. 어린양을 장만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제물로 바치는 산비둘기 두 마리와 함께, 구세주께서는 성전에 봉헌되셨습니다(루카 2,24; 레위 5,7 참조). 또한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나셨고 손수 노동하여 양식을 마련하셨습니다. 구세주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셨을 때, 가진 것 없는 무리가 그분을 따랐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라고 그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분께서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하시며,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과 가난에 짓눌린 이들에게 하느님 마음속에 그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다고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구세주께서는 그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마태 25,35). 그리고 이 모든 이에게 베푸는 자비가 천국의 열쇠라고 가르치셨습니 다(마태 25,35 이하 참조).
마지막으로 실천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을 실천을 통해서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그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해 힘써야 한다(187항 참조). 교황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제시한다.
교황에게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의 핵심은 다른 이를 위한 관심이다.
성령께서 촉구하시는 것은 과도한 행동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다른 이를 “어떤 의미에서 나 자신과 하나”라고 여기며 다른 이를 향하여 쏟는 관심입니다. 이 사랑의 관심에서 그 사람에 대한 참다운 관심이 시작되고 내가 실질적으로 그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난한 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의, 경험, 문화, 신앙생활 방식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포함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관상적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복음의 기쁜 소식은 가난한 사람에게 전해졌습니다. 교황님의 지향처럼,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희망해야 하지 않을까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도록, 가난한 이에게 관심을 갖고, 가난한 예수님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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