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자 소개
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의 삶
창설자 방유룡(레오)신부의 삷
무아 방유룡 신부는 1900년 3월 6일에 서울 중구 정동(서소문 안 대한문 옆)에서 당시 궁내부 주사
(宮內部 主事)로서 영국공사관의 통역관으로 지내시던 아버지 방경희와 어머니 손유희 사이에서 육 남매 중 네 번째 자녀로 출생한다. 그리고 당시 한학자(漢學者)였던 할아버지 방제원은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이었던 민 주교(Mutel)와 만주 연길교구장이었던 백 주교(Breher)에게 한문을 가르치셨다고 전한다.
신학문으로 개화한 집안에서 자란 방유룡 신부는 1917년 18세에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신학교에 입학한 방유룡 신부는 신심 서적과 수도원 방문을 통하여 좀더 완전한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하여 수도 생활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몇 차례에 걸쳐 수도회에 입회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고, 결국 사제가 된 뒤 봉직 의무 연한을 채운 뒤 수도회에 입회하고 하였다. 수도회 입회를 위해 한국에 진출한 외국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방유룡 신부는 자신의 특별한 소명은 외국 수도원에 입회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한국적인 수도원을 설립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다 방유룡 신부는 1930년 10월 26일, 12년간의 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30세에 노기남, 윤형중, 임충신, 양기섭 등 10명의 동료들과 함께 사제 서품을 받았다.
방유룡 신부는 강원도 춘천본당의 보좌신부 생활을 시작으로 황해도 장연본당의 보좌신부를 거쳐, 1933년 황해도 재령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방유룡 신부는 남녀 칠세 부동석의 해묵은 폐습이었던 남녀석을 가르는 칸막이를 성당에서 없애고, 처음으로 오르간을 사서 설치하고 청년 성가대를 결성하는 등 가톨릭 청년활동을 활성화시켰다. 아울러 본당 사목을 하면서 방유룡 신부는 수도원 지망자들을 특별히 사랑하고 교육·지도하는 데 대단한 애착을 보였다. 이는 방유룡 신부 자신도 신학교 시절부터 수도 생활을 원했고,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뜻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방유룡 신부는 해주본당 주임신부로 재직하면서 수도 생활을 갈망하는 윤병현(데레사)을, 그로부터 6년 뒤인 1942년에는 경기도 개성본당에 재직하면서 홍은순(마리 데레사)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방유룡 신부는 수도원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게 되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월 21일에 개성본당 사무실에서 윤병현·홍은순 수녀와 함께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립하였다. 그 해는 바로 병오박해(1846)때 순교한 한국 최초의 사제이던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지 100년이 되던 해였고, 창립하던 날은 바로 부활 대축일이었다. 방유룡 신부는 한국적인 수도 생활의 맥은 당연히 한국천주교회의 창립자들이며 신앙의 선조들이었던 한국의 순교자들의 얼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 설립하는 수녀회의 이름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라고 정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육영보통학교와 장미양재여학원을 설립 운영하였고, 1950년 3월 8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현재의 본원으로 자리를 이전하였다. 방유룡 신부는 1950년 5월 서울교구 가회동본당의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본당으로 출퇴근하면서 본당 사목을 하였다. 그러다 그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1950년 12월 1일 방유룡 신부는 서울교구 제기동본당의 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아직 전쟁 중인 1951년 12월 12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설립에 대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어서 1953년에는 남자회원들을 위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창립함으로써 한국적인 영성으로 살아가는 남녀수도회를 설립하겠다던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방유룡 신부는 1954년 12월 22일 현 성당 부지(제기2동 182번지)를 사들였고,
1955년 1월 9일 제기동본당에 제4대 주임 김제근(토마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57년 3월에는 재속회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제삼회를 설립하였고, 1962년 10월에는 기혼 여성·미망인들을 위한 수도 공동체인 빨마회의 설립을 윤병현·홍은순 수녀에게 허락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대가족의 창립자가 되었다.
1957년 5월 6일에는 방유룡 신부님은 자신이 창설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종신서원을 하였고
(수도성 무아 無我, 수도명 안드레아 성 김대건), 서울교구 사제에서 수도 사제로 소속을 바꾸었다. 그 뒤 한평생을 스스로의 영적 수덕 생활에 몰입하면서 남녀 수도 회원과 찾아오는 몇몇 일반 신자들의 영적 지도에 전념하다가 1986년 1월 24 선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