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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앵베르 주교님(조선교구 2대 교구장)

작성자
수도회
작성일
2015-12-29 09:52
조회
504

앵베르 라우렌시오(축일 9.20)

성 로랑 요셉 마리위 앵베르(Laurent Joseph Marius Imbert) 주교의 세례명은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이며한국 이름은 범세형(范世亨)이다그는 1796년 3월 23일 프랑스 남부 엑스(Aix) 교구의 마리냔(Marignane) 본당 관할 브리카르(Bricart)에서 태어났다그의 부모는 앵베르가 태어난 지 몇 달 후에 카브리에(Cabries)의 라보리(Labori)로 이사하였고앵베르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의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그 자신은 총명할뿐더러 기도나 공부에도 열심이었다어려서부터 스스로 묵주 만드는 법을 배워 공부를 하는 한편나이 많은 부친의 생활에도 보탬을 주었다고 한다.

 

그가 마음속에 동방의 포교지방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엑스의 대신학교를 다니면서부터였다그래서 그는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로 옮겨가 공부한 후, 1819년 12월 18일에 성품성사를 받고 곧 중국의 사천(四川)으로 파견되었다앵베르 신부는 12년 이상 사천에 머물렀다그는 중국의 언어와 풍습을 익혔으며모든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던 중 1836년에 조선의 제1대 교구장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으며이듬해 주교가 사망하자 곧 주교품을 받고 조선의 제2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그리고 그 해 12월 17일 중국 대륙을 건너 몽고의 서만자(西灣子)에 머물고 있던 그는 마침 조선 사신의 수행원으로 동행한 교우 조신철정하상 등의 협력을 얻어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이렇게 하여 조선의 교우들은 처음으로 주교를 맞이하게 되었으니실로 조선 교회가 설립된 지 53년만의 일이었다.

 

3개월 동안 조선말을 배운 앵베르 주교는 고백을 듣고서 성사를 줄 수가 있었다그는 이미 조선에 와 있던 모방(Manbant, 신부와 샤스탕(Chastan, 신부와 함께 지방을 순회하기도 하고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외교인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는 운동도 전개하였다이때부터 조선 교회는 오랜 재난을 겪은 후 주교를 맞으면서 재생하기 시작하였다앵베르 주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스러운 직무를 수행하였다그는 항상 허약하고 병든 몸으로 매우 바쁜 생활을 하였지만한편으로 그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삼고 있었다다만 그에게 무한히 괴로운 것은 박해로 말미암아 신입교우들의 신앙이 끊임없이 위협을 당한다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었다곳곳에서 교우들이 체포되자 앵베르 주교는 박해가 퍼지기 전보다 더 많은 교우에게 성사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교우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모습을 나타내었다그러는 동안 사태는 점점 위태롭게 되어갔고배교자들의 자백으로 3명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배교자 김여상은 관헌들과 짜고 주교를 유인하려고 하였으며주교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수의 길을 택하고다른 두 신부들도 주교의 권고를 받아들여 즉시 관청에 자수하도록 하였다포청의 옥중에서 세 선교사는 서로 만날 수 있었다주교는 여러 번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며 두 신부들과 함께 옥중의 고초를 이겨냈다조선 정부는 그들이 절대로 배교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마침내 대역 죄인이라는 죄목으로 군문효수에 처하도록 판결을 내리고처형 장소는 한강변의 새남터로 결정하였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자 세 선교사들은 팔을 뒤로 결박당한 채 가마를 타고 형장으로 끌려갔다형장에 이르자 군사들은 선교사들의 옷을 벗긴 다음 손을 앞가슴으로 결박하고겨드랑이에 긴 몽둥이를 꿰고화살로 귀를 뚫고얼굴에 회를 뿌린 다음 군중의 조롱과 욕설을 듣게 하였다그런 다음에 한 군사가 장대 위에 기를 올리고 또 다른 군사는 사형 선고문을 읽고 나서 수형자들을 무릎 꿇린 다음 열 명 가량의 병정이 달려들어 칼질을 했다그래서 한국 교회는 천신만고 끝에 얻은 성직자들을 3년 만에 잃게 되었다앵베르 주교는 1839년 9월 21일에 순교하였으며그의 나이는 43세였다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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