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복음나누기

산 이들의 하느님 – 연중 제9주간 수요일

작성자
하느님의 사랑
작성일
2023-06-07 15:13
조회
4131

 

6월 7일 / 연중 제9주간 수요일

제1독서 : 토빗 3,1-11ㄱ.16-17ㄱ / 복음 : 마르 12,18-27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을 만나고, 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해 주십니다.

 

신명기에는 아들 없이 죽은 형의 가문을 이어주기 위해서 동생은 형수와 결혼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과부가 된 한 부인이 모세의 규정에 따라 시동생들과 결혼하여 살다가 죽어 다시 살아나면, 그 부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세의 삶이 부활의 삶으로 어느 정도나마 계속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지적하십니다. 부활은 현세의 연장이 아니라, 천사와 같아진다고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설명해 주시는데, 그들이 믿고 있던 모세오경을 통해 전해 주십니다.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마르 12,26)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 12,27) 라고 부연 설명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시대에 그리고 그 사람에게 고유하게 살아계신 분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 자신은 사두가이들처럼 죽은 이들의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 봅니다. 구체적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찾는 모습을 봅니다.

 

한 시인은 시를 쓰는 과정을 이렇게 전합니다. 평소 인생을 사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결국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가 이루어지는 순간만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인생에도 운명적인 어떤 순간이 있는데, 시도 어떤 운명적인 순간에 의해 써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뿐이다.

‘시의 첫 행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굳게 믿는다. 인간의 삶에서 신의 영역은 절대적이다. 신의 절대성에 의해 인간인 내 삶이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정호승,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비채, 2020, 130)

 

시인은 노력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이 이루어지는 부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라는 젊은이와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를 봅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주님께 자신의 삶을 맡겨드리십시오. 덕행을 기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젊은이의 마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까닭에 여러분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머물고 그분과의 ‘접속을 유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지력만으로는 행복해지고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접속이 끊어지지 않게 애쓰는 것처럼, 여러분이 주님과 접속되어 있음을 확인하십시오. 이것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여러분의 삶을 주님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을 때에, “예수님, 저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라고 주님께 여쭈어보아야 합니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158항)

 

시인과 교황님의 권고를 보면, 공통적으로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관계 맺음을 전해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마르 1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와 마주하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잘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미사와 많은 교육을 통해 하느님에 대해 듣고 배우는 과정의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들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직접 마주하고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셨던 것처럼, 우리 각자는 지금 베드로 형제님의 하느님으로, 마리아 자매님의 하느님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각자가 살아계신 하느님과 그 신앙의 삶을 잘 살아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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